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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에 관한 담론

海별쌤 2009. 2. 21. 00:10


-에이메 세제르 지음/이석호 옮김


유라시아 다음으로 지구상에서 큰 대륙 아프리카. 국가 수는 총 54개국, 인구수는 약 8억.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들 중 누구보다 조직적으로, 대대적으로 이산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유태인이 아니라 아프리카인들.

(8) 세계문명사에 혁혁한 공헌한 아프리카 문명이 오늘날 왜소한 초상을 가진 위악적인 문명으로 둔갑하게 된 데에는 서구의 근대가 끼친 폐악이 적지 않다. 근대 이후 세계사의 패권을 장악하고 각기 근대국가로의 발돋움하던 서유럽은 아프리카 비롯 기타 문명을 의도적으로 타자화. 세제르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는 “인도인들, 황인종들 그리고 흑인들”

(9) “위선이란 근대의 산물....양민을 학살하고, 노략질을 일삼으며, 헬멧과 창과 탐욕으로 무장한 노예제도 지지자들은 그 후에 나타났다. 그 원흉은 바로 기독교 정신이다. 기독교는 문명이고, 이교도는 야만이라는 부정한 방정식을 성립시킨 기독교. 그 때문에 타락한 식민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도인들, 황인종들 그리고 흑인들에게로 돌아왔다.”

(11) 먼저, 우리는 식민주의가 식민주의자들을 어떻게 탈문명화시켰고, 피폐하게 했으며 동시에 비인간화했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식민주의가 식민주의자들의 잠들어 있는 본능을 일깨워 탐욕과 폭력과 인종차별과 도덕적 상대주의로 나아가게 했는지도 연구해보아야 한다.

(12) 세제르는 경고한다. ‘히틀러의 부활’ 나아가 ‘히틀러의 내면화’를 조심하라고. 식민주의 경험에 관한 한 유럽을 반면교사로 삼는데 실패한 미국이 마지막으로 귀담아 들어야 할 세제르의 유언은 바로 이것이다.

동시에 대단히 별나고 인본주의적이며 신실하기까지 한 이십세기 부르주아 기독교도들에게 그들도 모르는 사이 그들 속에는 히틀러가 주리 틀고 있었음을 간지해주는 일 역시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 따라서 그들은 한 몸인 히틀러를 단죄할 수 없었음을 말이다. 히틀러를 단죄하는 일은 곧 자신을 단죄하는 모순이 되므로.



식민주의와 운명

(19) 스스로 자초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은 문명은 부패한 문명이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에 슬그머니 눈을 감아버리는 문명 역시 병든 문명이다. 스스로를 지탱하는 원칙을 속임수나 사기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문명은 물론 사멸해가는 문명이다. 약 이백여 년 동안 부르주아 계급의 통치를 받은 소위 유럽의 문명 혹은 ‘서양’ 문명은 그 문명의 근간이 되는 두 가지 주요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다. 프롤레타리아 문제와 식민주의의 문제가 바로 그 두 가지다.

(21) 식민주의는 복음화, 박애주의 사업, 무지와 질병과 폭군을 물리치고자 하는 욕망, 신의 영광을 위한 기획 그리고 법치를 확장하기 위한 시도와 무관하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식민주의란 모험가, 해적, 도매상, 선주, 채굴업자, 상인, 탐욕과 무력 그리고 그 뒤에 숨어 부끄럽게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는 문명이라는 형식의 그림자임을 덤덤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명이라는 형식의 그림자는 어느 역사적 시점에 도달하면 내부적인 이유 때문에 상호 적대적인 경제적 대립물을 전 지구적인 규모로 경쟁시킬 수밖에 없다.

(22) 양민을 학살하고, 노략질을 일삼으며, 헬멧과 창과 탐욕으로 무장한 노예제도 지지자들은 그 후에 나타났다. 그 원흉은 바로 기독교 정신이다. 기독교는 문명이고, 이교도는 야만이라는 부정한 방정식을 성립시킨 기독교. 그 때문에 타락한 식민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가 양산될 수밖에 없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도인들, 황인종들 그리고 흑인들에게로 돌아왔다.

식민주의는 진정 상호 이질적인 문명들을 만나게 했는가? 아니면 한 발 양보해서, 만남을 주선하는 방식 중 식민주의가 진정 최선이었는가? 나의 대답은 ‘아니오’이다.

(23) 우리는 식민주의가 식민주의자들을 어떻게 탈문명화시켰고, 피폐하게 했으며 동시에 비인간화했는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36) 내게는 또한 식민주의가 견인한 파괴의 원칙 때문에 곧 사라져갈 운명에 처한 문명들이 명확하게 보인다. 남태평양군도, 나아지리아, 말라위의 문명이 그것이다. 식민주의가 공헌한 바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야 찾아볼 수가 없다. 치안? 문화? 법치? 돌이켜보건대 식민주의자와 식민지인이 정면으로 대면한 곳에서는 언제나 예외없이 폭력과 야만, 잔인성과 가학성 그리고 갈등이 불거져 나왔다. 교육이라는 미명을 통해서는 소위 장사를 하는데 필요한 소수의 하역 기능인들과 “하급들”, 장인들 및 사무직원들 그리고 통역사들이 급조되었다.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주의

(100) 이제 묻겠다. 그 외에 부르주아 유럽이 저지른 일들이 어떤 것인지 아느냐고? 문명을 침해했고, 국가들을 파괴했으며, 민족들을 유린했고, “다양성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뿐만 아니라 제방도 요새도 모두 허물어 버렸다. 야만의 시간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야만의 시간을. 바로 미국의 시대가 그것이다. 폭력, 과용, 낭비, 상업주의, 속임수, 분파주의, 무식함, 천박함, 무질서의 시대 말이다.

(102)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건대, 조심하라! 미국의 지배는 영원히 원상을 불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지배이므로. 다시 말해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 지배이므로. 공장들과 산업에 대해 너무 기대하지 말라. 그 엄청난 공장들이 우리네 산림의 심장을 향해, 우리네 밀림의 심장을 향해 신경질적으로 뱉어내는 검은 재가 보이지 않는가? 이것들은 노예들을 생산하는 공장들일 뿐이다.

(104) 진정한 혁명이 필요한 것이다. 계급 없는 사회가 도래할 때까지 비인간적인 부르주아의 왜소한 독재를 걷어내고 여전히 지구적인 임무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계급에게 미래를 넘겨주는 혁명 말이다. 왜냐하면 이 계급은 역사상의 모든 오류를 그리고 지구상의 모든 행악을 온몸으로 견디어낸 계급이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프롤레타리아가 그들이다.